- [인터뷰] 이보영, 한 떨기 꽃에서 듬직한 거목으로
- 출처:아이즈 ize|202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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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집어삼킬 듯 매서운 눈빛을 하던 한 여자는, 뒤돌아서자마자 낯빛이 빠르게 어두워진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얼굴을 하고선 남들의 눈을 피해 약을 삼킨다. 돌아온다던 엄마는 자신을 터미널에 버린 채 나타나지 않았고, 동료들은 그를 ‘돈시오패스‘라며 힐끔대고 경계하며, 못된 상사는 끊임없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 자신이 일을 잘해서 따낸 거라 믿었던 간부 자리가 실은 ‘얼굴마담‘에 불과한 1년 짜리 시한부라는 걸 알았을 때, 결국 여자의 입에선 "패배했을 때 악랄해지는 인간들이 역사를 만들지"라는 말과 함께 눈에 더한 독기를 채운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가 술과 약으로 독기를 달랜다.
위태롭지만 결국엔 딛고 일어서는 여자. 이보영이 연기한 JTBC 토일드라마 ‘대행사‘의 고아인처럼, 그도 녹록지 않은 세상과 수시로 부딪혔다. ‘대행사‘와 고아인을 향한 스포트라이트는, 그가 두려움을 딛고 이겨낸 끝에 얻어낸 결과다. 배우 초년 시절 이보영은 카메라에 둘러 싸여 혼나고 깨지고 얼굴을 붉히는 시간들을 견뎠다. 감독에게 혼날까봐 "겁을 냈"고, 열심히 준비한 표정 연기가 카메라 앞에만 서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힘겨웠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이보영은 ‘대행사‘의 고아인을 연기하며 자신의 초년 시절을 떠올렸다.
‘대행사‘는 VC그룹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고아인(이보영)이 최초를 넘어 최고의 위치까지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그린 광고대행사 오피스물이다. 이보영이 연기한 고아인은 성공을 트로피가 아닌 갑옷으로 여기는 인물이다. 도박꾼이자 술꾼인 아빠와 가출한 엄마 덕분에 7살 때부터 고모가 주는 눈칫밥을 먹으면서 자랐고, 때문에 행복도 사치인 오로지 성공이 목표인 삶이 됐다. 동료들에겐 냉혈한, 후배들에겐 두려움의 대상, 친구에겐 걱정스런 존재다.

이보영은 이런 고아인과 자신의 싱크로율을 1%도 없다고 답했다. 약까지 먹어가며 전쟁 치르듯 커리어를 쌓아가는 모습은 실제 이보영과 정반대에 놓여있다. 때문에 촬영 내내 이보영이 달고 살았던 말이 "뭣이 중한디?"였다. 그러나 초년 시절 고아인의 모습을 보곤 이보영도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아인이 미숙함으로부터 고군분투하던 모습은 그 역시도 지나온 삶이기 때문이다.
"아인과의 싱크로율 1%도 없어요. 저렇게 적막한 집에 혼자있는 것도 싫고, 막말하는 사람도 못돼요. 외모 빼고는 성격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없어요. 사실은 아인은 진짜로 센 게 아니라 센 척을 하는 인물이잖아요. 겉은 강하지만 속은 한없이 망가져 있죠. 내면을 저렇게 갉아먹으면서까지 성공을 욕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만큼 생존하는 게 힘든 현실이기도 하니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시지 않았나 싶어요. 저도 회사 생활은 아니지만 다른 형태의 사회 생활을 했잖아요. 아인의 초년 시절을 보면서 제 모습이 생각나더라고요. 모두가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고 있는 거잖아요. 아인의 고군분투에서 예전의 제 생각도 많이 났죠."
‘대행사‘는 평균 10%대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전작 ‘재벌집 막내아들‘의 바통을 잘 이어받았다는 평가와 함께, 이보영은 원톱 여주로서의 가능성을 한번 더 인정받았다. 충분히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이보영은 들뜨지 않았다.
"자부심이나 평가에 대해 큰 생각은 없어요. 일을 오래하다보니 일희일비하지 말야햐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방송이 끝나면 금방 잊히잖아요. 그저 최근 들어 운이 좋았는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작품들을 연달아 찍고 있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이런 작품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있었어요. 그것 빼고는 어차피 작품이라는 건 금방 대중들 기억 속에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기 때문에 이걸로 뭘 보여줘야겠다는 부담감은 없었어요."

고통과 외로움을 참고 정상에 오른 고아인처럼 이보영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미숙했던 시간들을 지나 이보영은 이제 드라마 하나를 이끌어가는 주연 배우다. 좌절은 있었어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시간들은 이 순간 이보영에게 진정으로 연기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을 피어냈다.
"처음 배우 일을 시작했을 때 이 일이 적성에 안 맞는 게 아닌가 했어요. 감독님한테 혼나는 게 겁이 났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카메라 앞에만 서면 얼굴이 제 마음대로 안움직이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연기하는 게 무섭기도 했어요. 그래서 아인을 보면서 과거의 제가 많이 떠올랐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든 생각은 그래도 아인이처럼 버티고 지나온 시간들이 있어서 어느덧 연기하는 게 재밌어졌고, 또 저의 캐릭터를 대중 분들께서 사랑해주실 때 큰 성취감을 느껴요. 이제는 누군가가 저를 필요로 하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연기하고 있어요."
‘내 딸 서영이‘를 시작으로 ‘마더‘나 ‘마인‘ 그리고 이번 ‘대행사‘까지 이보영은 전문직 전문 배우로도 불린다. 하지만 과거 그는 ‘청순 전문 배우‘로 불렸던 시절이 있다. 그가 연기한 영화 ‘우리형‘의 미령, ‘비열한 거리‘의 현주 등은 청순한 첫사랑으로 표상되던 캐릭터들이다. 물망초처럼 극에 존재했던 시절을 지나, 이보영은 자신을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에 담금질하며 오늘날을 일궜다. 그리고 그는 더욱 뜨거운 열정으로 자신의 목표를 다잡는다.
"제가 최근의 출연작들에서 전문직도 많이 연기했지만 그 이전에는 청순한 이미지의 첫사랑 같은 역할들을 많이 맡았어요. 어릴 때는 역할이 한정돼 있고 대사 끝에 ‘...‘이나 ‘또르르‘한 것들만 들어오니 밝은 역할도 하고 싶다는 고민이 있었어요. 이젠 저마다 잘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걸 깨우쳤어요. 지금은 제가 출연을 했을 때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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