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리언 주짓수와 종합격투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전 세계 무술 중 어떤 무술이 가장 셀까?’라는 원초적 궁금증에서 시작한 UFC. 1993년 UFC 1회 대회엔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대가 호이스 그레이시(57·브라질)가 주짓수 대표로 나왔다. 당시 UFC는 지금과 다르게 각 무술 별로 대표가 나와 격돌했다. 여기서 그레이시는 3경기를 4분 55초 만에 끝내고 가볍게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경기를 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짓수가 세계 최강의 무술이구나.’ 주짓수 붐의 시작이었다.

이후 UFC에 여러 주짓수 스페셜리스트가 등장했다. 그러던 중 2018년 전 세계 격투기 팬들의 관심을 끌만한 사건이 생겼다. 세계 최정상급 여성 주짓수 파이터, 맥켄지 던(30·미국)이 UFC에 데뷔한다는 소식이었다.

던은 세계 3대 메이저 주짓수 대회 블랙벨트(가장 높은 등급) 부문에서 7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주짓수 금수저’였다. 세계선수권 2회 우승, 팬암선수권 2회 우승, 아부다비 월드 프로페셔널 선수권 3회 우승을 기록했으며 2016년 아부다비 월드 프로페셔널 선수권에선 가비 가르시아라는 강력한 우승 후보를 꺾으며 명성을 드높였다.

주짓수 천재의 UFC 입성 소식에 팬들의 관심은 하늘을 찔렀다. 데뷔전 판정승을 거둔 던은 두 번째 경기에서도 리어 네이키드 초크에 의한 서브미션 승을 거두며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세 번째 경기에서 아만다 리바스(30·브라질)에게 만장일치 패를 당했고, 이후 4연승을 하며 타이틀전까지 직행하나 싶었지만 다시 마리나 로드리게스(36·브라질)에게 만장일치 판정패하며 기세가 꺾였다. 이후 테시아 토레스를 판정으로 이겼지만 최근 경기에서 다시 옌 샤오난(34·중국)에게 판정패를 당했다.

UFC 여성 스트로급 랭킹 8위 던이 오는 21일(한국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UFC 파이트나이트’ 메인이벤터로 돌아온다. 지난 경기 패배 이후 7개월 만. 상대는 랭킹 14위 안젤라 힐(38·미국)이다. 던을 지난 18일 줌으로 만났다.

던은 지난 경기 패배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던은 “옌 샤오난과의 경기는 굉장히 근소했다. 톱 파이터들은 어떻게 해야 ‘스포츠’답게 싸우는지, 어떻게 규칙을 활용해야 하는지 안다”며 “이젠 나도 경험이 좀 찼다”고 했다. 그는 “이젠 그라운드 상황에서 서브미션을 성공시키지 못하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라운드 앤 파운드, 엘보우 등 다양한 공격을 해 라운드를 이기는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당초 이 경기는 지난주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UFC가 다른 경기 일정을 조정하다 이 경기가 이번 주로 한 주 밀렸다. 경기가 한 주 미뤄지면서 던과 힐의 경기는 메인이벤트로 승격됐다. 메인이벤트는 3라운드가 아닌 5라운드로 펼쳐진다.

던은 “지난주 경기를 위해 컨디션을 다 맞춰놨지만 일주일 미뤄진 것이니 괜찮다”며 “체중도 거의 맞췄고 지금은 컨디션이 좋다. 메인이벤트로 바뀌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갑작스런 5라운드 변경에 체력이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언제나 5라운드를 생각하고 훈련한다”며 “그리고 안젤라 힐을 그라운드로 데려갈 시간이 더 많아지는 것이기에 나에게 오히려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대인 힐에 대해선 ‘경험이 많고 터프한 선수’라고 칭하면서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힐은 2017년 UFC에 입성해 19경기를 치른 베테랑이다. 다만 9번 승리하고 10번 패배해 어느 정도 한계가 분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던은 “힐은 여러 선수와 싸워봤다”면서도 “나 같은 선수는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경기는 좀 지능적으로 하려고 한다”며 “‘나가서 끝내버리자’ 이런 생각보다는 힐이 실수를 하게 유도하고 서브미션, 그라운드 앤 파운드, 팔꿈치 공격, 무릎 공격 등 다양한 공격을 할 것”이라고 했다. 던은 “공격적으로 하겠지만 영리하게 하겠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던은 이번 경기 승리 후 전 챔피언 로즈 나마유나스(31·미국)를 노린다. 긴 리치를 활용한 타격이 일품인 나마유나스는 지난해 5월 타이틀전에서 패한 뒤 쉬고 있는 상태다. 던은 “이번 경기를 이기면 로즈 나마유나스와 붙고 싶다”며 “전 챔피언과 붙어본 적이 없어서 내 자신에게 좋은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던은 “옌 샤오난이 타이틀전을 하지 않는다면 옌 샤오난과의 리매치도 좋다”고 했다.

현재 UFC 여성 스트로급 챔피언은 장 웨일리(34·중국)다. 장 웨일리는 오는 8월 UFC292에서 아만다 레모스(36·브라질)를 상대로 타이틀 방어전을 치른다. 던은 “경기가 판정까지 가지 않으면 아만다 레모스, 판정으로 가면 장 웨일리의 승리를 예상한다”고 했다.

던은 2019년 딸 모아(4)를 출산한 ‘엄마 파이터’다. 그런 던은 이번 훈련 캠프가 유독 힘들었다고 했다. 이혼을 하게 돼 법원을 다니다보니 훈련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던 탓이다. 던은 “이혼을 위해선 양육이나 금전적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다”며 “법원도 왔다갔다 해야 해서 훈련에 집중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헤드코치도 루크 락홀드의 경기를 봐준다고 한 달 동안 체육관을 떠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던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고 믿는다. 던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와, 이 상태로 경기를 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하지만 메인이벤트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좋아. 해보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던은 “여러 일들이 겹쳤지만 결국 나에게 좋게 작용한 것 같다”며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관점을 다르게 보게 됐다”고 했다. 정신적 측면에서 성장했다는 취지다.

한국 팬들에게 인사해달라는 말에 던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한국 팬 여러분! 조만간 만나러 가길 진심으로 바라요. 가서 세미나도 하고 소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해요!”